게임은 공부와 전혀 연관이 없을까?
게임을 하고 있으면 종종 듣는 잔소리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할 것이지" 등이 있다.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 "게임에도 가치가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논리적인 근거가 부족하여 반박을 못 한다.
과연 정말로 게임에는 공부에 도움이 안 될까?
명작 RPG '울티마 온라인'의 개발자이자 재미이론의 선구자 라프코스터의 이야기와
학습과학과 예시를 통해 게임의 가치를 조명해봐요.
학습이란?
학습과학에서는 학습은 "정보의 패턴을 확인하고, 잦은 활용을 통해 자동화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간단히 "정보의 패턴을 확인하고"를 패턴화로, "잦은 활용을 통해 자동화하는 것"을 연습을 통한 "프로그래밍화"("자동화")라고 하자.
패턴화
만약 우리가 알파벳 A를 배운다고 해보자.
처음 A라는 문자를 보고 배울 때 우리는 A의 특징을 살펴보지,
A의 높이, 길이, 넓이, 모양 등을 살펴보지 않는다.
A가 어떠한 필체이든지 간에 우리가 A를 A라 인식하는 것은 그 글자의 패턴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를 패턴이라는 본능의 영역이다.
즉, A라는 글자의 패턴을 알아내서 그 글자에 A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학습의 첫 번째 단계, 패턴화이다.
이 글자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무게가 있는 모든 물체는 떨어진다 는 법칙을 발견하고 중력,
한국말은 주어 뒤에 동사가 온다는 규칙을 알고 그걸 통해 문장을 만드는 것 등
이것들이 모두 패턴을 인식하고 패턴을 만들어내는 패턴화이다.
자동화
학습의 1단계, 패턴화를 알았으니 2단계, 잦은 활용을 통한 자동화를 알아보자.
학습의 두 번째 과정은 연습을 통한 프로그래밍화이다.
이는 패턴화로 익힌 패턴을 머릿속에 확실히 새겨넣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정리해서 학습과학에서의 학습은 패턴화와 프로그래밍화로 이루어져있다.
패턴화의 예
Chants of Sennaar
패턴화의 예시로 가장 적절한 센츠 오브 세나르라는 게임이 있다.
이 게임은 말이 안 통하는 완전한 이세계에서 이세계의 문자를 해석하는 게임이다.
처음 게임에 들어가면 이세계의 신자가 내게 말을 걸지만 전혀 의미를 알수 없는 말로 우리를 반긴다.
그러나 신자의 몸짓과 그 이후의 동작을 통해 말을 대강 이해할 수 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보통 상황, 몸짓과 말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기에 이해가 가능했던 것이다.
마치 외국에서 바디랭귀지로 이해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후 등장하는 문자는 해당 문자를 기반으로 천천히 대화를 이해하고 문제를 헤쳐나간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과 문자 사이의 패턴을 파악해서 상황에 맞는 문자를 찾아내는 것으로 패턴화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황과 문자 사이의 패턴 이 하나로만 게임을 만들기에는 게임이 너무 단순합니다.
중간에 문자를 이용한 미니 게임을 통해 공통적인 특징을 가진 문자를 살펴볼 수 있다.
문자 자체도 일종의 패턴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문자들이 비슷한 패턴을 가지는 데 사람, 신자, 기사는 모두 사람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고 사전을 열어보면 이걸로 인해 플레이어는 상황과 문자 사이의 패턴 외에도 의미와 문자 사이의 패턴을 알 수 있게 된다.
이후에도 문장의 순서가 다른 언어라든가, 의문문이나 부정문 등 여러 패턴이 등장한다.
이렇게 게임에는 수많은 패턴이 내재되어 있고 이런 일련의 패턴을 알아가는 패턴화의 과정은 무언가를 학습하는 과정과 전혀 다를 게 없다.
프로그래밍화의 예
ELDEN RING
센츠 오브 세나리에서 연습은 거의 없다.
각 층의 언어를 다 해독한 뒤에 층별로 소통이 안 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약간의 퍼즐이 존재하지만 이게 전부이다.
왜 연습의 과정은 뺐을까? 너무 당연하게도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패턴을 학습하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재미를 가지지만 연습은 그렇지 않다.
이 게임에서 완벽한 학습이란 그 단어로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수준일 텐데 현실에서 쓰이지도 않는 언어를 마스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즉, 프로그래밍화의 완료로 얻는 보상이 없다.
그래서 연습의 과정은 턴제 게임이나 시간을 멈출 수 있는 게임에서는 배제된다.
반대로 실시간 게임에서 잘 드러난다. 너무 당연하게도 실시간 게임 역시 학습이다.
연습에 대표적인 장르 소울라이크의 명작 엘든링을 살펴보자.
엘들링에서의 패턴화 과정은 간단하다.
이미 몬스터의 공격 자체가 패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플레이어는 그에 따른 대응 방식만 패턴화하면 된다.
몬스터의 공격을 다 파악하면 그건 이제 파악된 공격 그러니까 아주 쉬운 패턴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죠.
왜? 머리가 아는 걸 몸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영단어를 외워서 알고는 있는데 떠올리는데 30초가 걸린다면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엘들링의 보스 몬스터들 한 4-5번 만났을 때부터 모든 공격들 다 외웠다고 한들
깨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몸에 프로그래밍화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엘들링 같은 액션 게임의 메인 재미는 패턴화가 아니라 프로그래밍화에 있다.
처음에는 패턴 인식조차 안 돼서 피할 생각도 못하지만 좀 있다 보면 패턴 인식이 끝난다.
하지만 연습이 덜 돼서 아쉽게 피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되다가 결국에는 프로그래밍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을 때 보스를 클리어할 수 있다.
엘들링은 이렇게 프로그래밍화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패턴화의 과정은 쉽게 만들어준다.
다른 게임은?
위의 예시로 쓰인 게임말고도 다른 게임도 학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게임들이 유독 학습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과정은 모든 게임에서 일어난다.
가장 흔하게 하는 롤 역시도 스킬 구성, 스탯 상태 등의 패턴에 따라 탑, 미드, 정글, 원딜, 서포스로 나누어지고 그 중에서도 이니시에이터, 유틸형 등등 패턴을 고려해서 조합을 짜게 된다.
그럼 게임은 좋은 거야?
이렇게 "게임은 학습이다"라는 말을 중점을 두고 글을 써보았다.
그렇다고 모든 게임이 학습에 좋은걸까?
"게임은 학습이다"라고 주장한 라프코스터는 반대로 이런 말도 남겼다.
게임이 가르치는 것들은 너무 쓸데없는 것들이다.
우리가 생판 모르는 언어를 배워서, 몬스터의 패턴을 학습해서 현실에 도대체 어디에 쓰일까?
물론 이게 맞는 말일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선생님 경력으로서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핸재 유행하는 게임을 예시로 둘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게임을 잡을 때 "큐"를 잡는다에 쓰이는 '큐'가 무엇인지,
"LOL" 등 외국 은어 및 문화에 대해 이해시킬 때 등의 예시로 매우 적절하다.
특히, 어린 아이에겐 공부와 같은 게임을 통해 학습을 이어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게임에서 배우는 것이 쓸모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게임의 모든 요소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에 다뤄보자.
주섬주섬
게임 사진은 스팀과 롤의 공식 사진을, 기타 이미지는 AI 이미지를 통해 제작하였습니다.
"큐"는 컴퓨터과학의 자료구조 중 하나이다.
토론 주제로도 자주 사용되는 게임의 근거로 사용하여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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